주말에 어머니 생신이라 엄마, 그리고 아내와 해변카페에 있다가 갑자기 엄마가 말문을 여셨다.
‘아들 고등학교때 해수욕장에서 폭죽팔다가 건달들한테 쫒겨난일’이 기억이 나냐고 말씀하셨다.
18년이 지난일이지만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이게 나의 첫 사업 이었던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물건을 사입해서 마진을 붙여서 팔았던 첫 경험이었으니까,
이당시 영업방식은 보따리 장사였지만 나의 첫 사업이었다.
그당시..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어린 나이에 장사가 너무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슨 장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향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폭죽을 팔아보기로 결심했다.
이 당시에 나는 주말마다 항구에서 건어물 노점의 알바를 하면서 하루에 200만원을 판매했던 실적이 있었기 때문에 폭죽장사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약 13만원을 빌려서 온라인으로 폭죽을 두박스 구매했다.
그리고, 그 폭죽을 버스에 싣고 2번의 버스를 갈아타서 고향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가게 되었다.
해변에 도착한 후에는 한적한 끝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폭죽을 팔았다.
누가 영업을 알려준적도 없는데, 영업 스크립트가 술술 나왔다.
연인들에게는 커플끼리 즐길 수 있는 추억이라고 이야기 했고,
가족 단위의 고객에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놀이라고 했다.
또, 어른들에게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폭죽을 팔았고, 아이들과 오는 부모님들에게는 안전하고 은은한 폭죽을 팔았다.
10명의 고객을 컨택하면? 2명중 1명 이상은 구매 했으니,
그 당시의 나의 영업감각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당시 1천원짜리 폭죽을 약 2-3배의 가격에 팔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처 다른 상인보다는 싸게 팔았던 것 같다.
장사를 해보면 영업이 잘될때는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1-2시간 그렇게 열심히 푹죽을 팔다보니 갑자기 어떤 덩치큰 무리들을 만나게 되었다.
쪼리를 신고 머리가 짧은 인상을 봐서는 흔히 말하는 ‘건달’같았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았는데 나름 지역사회에서는 ‘명문고’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이름을 말했다.
그랬더니, 여기서 장사하면 안된다고 겁을 주더니 ‘건달’ 무리들이 사라졌다.
사실, 나이는 어렸지만 해변에 주인이 없다는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무서워서 바로 영업을 종료했다.
18년이 지났으니 꽤 오래전 일이지만 2시간 남짓 폭죽을 팔아서 번돈 액수까지 기억난다.. 37만원..
사입한 폭죽의 절반도 안팔았는데 2시간만에 원금의 2배 이상을 회수 했으니,
관광지에서 생각하는 폭죽장사는 꽤 고부가가치 사업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돌고돌아 사업자가 되어 다양한 영업활동을 하고 있지만,
문득, 무아지경의 상태로 영업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시기가 떠올랐다.
그당시 누구도 영업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멘트를 누구보다 잘 구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영업미팅을 나가면? 왜이리 잡생각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사람이 살것 같은지? 구매력은 있는지?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영업은 심플해야 잘되는 것 같기도 한데,
해변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절대 안살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능청스럽게 말을걸어 폭죽을 판매했던 18년전 기억이 떠올랐다.